나를 찾고 우리로 가는 여정

미래 교육은 책 속에 있지 않습니다.

대인관계 역량! 학교에서 어떻게 키울까?

거꾸로 캠퍼스 2023. 10. 24. 14:04

1. 들어가며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20세기 산업 기계 시대를 지나 기술적으로 복잡하고 전지구적으로 연결되어 상호변화하는 변화의 소용돌이속에서 우리의 문화는 진화하고 있다. 뷰카(VUCA: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의 시대! 우리는 기후변화와 심각한 전염병 대유행 등 위기에 대처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특히 2020년부터 전 지구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에 대처하면서, 우리는 누구도 정답을 알고 있지 못하며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함께 힘을 모을 수 있는 역량이 무엇보다 필요함을 느끼게 되있다. 

  비단 이런 필요성은 전지구적인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 일상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수술 의사, 마취과 의사, 간호사, 의료기사 등이 팀을 이루어 수술을 하고 있는 수술실을 생각해보자. 이 많은 수술 참여자들은 저마다 위치가 다를 뿐 아니라 살아온 과정이 다르며, 그에 따라 가진 생각과 생활방식도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수술이라는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역량은 팀원으로서 서로를 신뢰하고 힘을 모아 공동의 목표로 나아가는 것이다. 즉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내가 아닌 다른 사람, 그러나 나에게 중요한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하는 ‘대인관계역량'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2.  대인관계역량이란?

  교육실험실21은 역량을 ‘삶을 성공적으로 영위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공통적인 능력'으로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대인관계역량이란 ‘삶을 성공적으로 영위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대인관계 능력'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대인관계'란 집단 속에서 형성되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이라 할 수 있는데, 주요한 ‘대인관계'의 개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연구자 정의
Leary(1957) 대인관계의 행동적 측면을 강조하여 대인관계에서의 행동을 타인과의 명백하고 의식적이며, 윤리적, 상징적인 것과 관련된 행동이라고 정의
Heider(1964) 개인이 타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지각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와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기대하는지, 타인이 행동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의 여부
김태준, 윤헤경(2008)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타인과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갈등을 관리할 있는 사회적 능력. ,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역량
권일남, 김태균(2009) 타인의 마음 상태를 추론할 있고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이해함으로 그에 적절한 대처 양식을 개발할 있고, 조직과 집단 내에 협동을 유지할 있는 능력
한국교육과정평가원(2009: 김민영) 타인과 건전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능력과 태도
타인 이해 존중, 협동, 갈등 관리, 관계 형성, 리더십을 하위 구성 요소로 가짐
성은모 (2015) 기존의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을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고 스스로 리더십을 발휘하며 협동을 통해 집단의 성과에 기여하는 역량으로 다시 개념화하고, 대인관계 역량에 관계 형성, 리더십, 협동을 포함
또한 대인관계 역향이 개인 수준에서의 사회적인 능력뿐 아니라 소속 집단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궁극적으로 집단성과에 기여할 있는 역량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과는 차별성이 있다고 강조

<표1> 연구자별 대인관계 정리

  이처럼 많은 연구자들이 ‘대인관계’를 역량과 연결지어 설명하고 있지만, 2021년에 McKinsey&Company 에서 발간한 ‘미래의 직업 세계에서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기술 정의(Defining the skills citizens will need in the future world of work)’에서 논하는  대인관계(Interpersonal)범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인관계역량이 아우르고 있는 구체적인 기술들을 설명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시민에게 요구될 것으로 믿는 수준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1> Interpersonl (출처: Mckinsey&Company)

  이 보고서에 따르면 대인관계(Interpresonal) 범주에 속하는 기술들은 동원시스템(Mobilizing system), 관계발전(Developing relationship), 팀워크 효율성(Teamwork effectivness)로 구분되고, <그림1>과 같이 동원시스템을  다시 역할모델링(Role modeling), 윈윈협상(Win-win negotiations), 영감을 주는 비전 만들기(Crafting an inspiring vision), 조직의식(Organizational awareness)으로 나누고, 관계발전을 공감(Empathy), 고무적인 신뢰(Inspiring trust), 겸손(Humility), 사교성(Sociability)으로 분류하였다. 또한 팀워크 효율성을 포용적 육성(Fostering inculsiveness), 다양한 성격의 동기부여(Motivating different personalities), 충돌해결(Resolving conflicts), 협업(collaboration), 코칭(Coaching), 권한부여로(Empowering)로 세분하고 있다. 

  교육실험실21에서는 ‘미래의 직업 세계에서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기술 정의’를 바탕으로 대인관계 역량을 다음과 같이 하위요소를 아우르는 능력으로 세분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하위요소 세부 구성요소 요구되는 숙련도
의사소통 적극적 경청, 겸손한 질문, 메시지 합성, 스토리텔링 적극적 경청과 적절한 질문을 통하여 대화할 있으며, 많은 양의 정보를 짧은 메시지로 합성하거나 다양한 청중에게 효과적으로 메시지와 감정을 전달할 있다.
관계조율 사교성, 수용, 공감, 신뢰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행동하여 편안함을 느끼게 하며,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있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필요(needs) 자신의 것과 동일하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믿음을 고취한다.
협업 조직의식, 겸손
갈등관리, 윈윈협상
많은 사람들이 협력하고 조정할 있는 방법을 이해하고 있으며, 팀안에서의 자신의 성취를 바라는 태도를 가짐. 갈등을 파악하고 목표와 역학에 맞춰 이를 해결할 있음. 다른 사람의 관심과 필요에 따라 모든 당사자의 이익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제시할 있음.
리더십 비전만들기, 동기부여, 권한부여, 역할 모델링, 코칭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한 비전을 제시할 있으며, 다른 성격과 상황을 가진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함. 기대치와 목표를 설정하면서 활동과 결정을 위임할 있으며, 타인으로하여금 특정 행동을 롤모델링하려는 의지와 욕구를 유발할 있음. 다른 사람의 수행이나 학습을 촉진할 있음.

<표2> 대인관계역량의 하위 요소

  <표2>에 따르면 대인관계역량은 의사소통, 관계조율, 협업, 리더십이라는 네가지 하위요소로 구성된다. 의사소통은 개인이 상대방 또는 다수의 사람과 효과적으로 정보와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적극적으로 경청하고 적절하게 질문함으로서 효과적으로 대화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사람은 대인관계역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아울러 의사소통 과정에서 얻은 많은 양의 정보를 짧은 메시지로 함축하여 이해하거나, 반대로 많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축약하여 다양한 의사소통수단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것 또한 대인관계역량의 중요한 요소이며, 다양한 청중에게 효괴적으로 메시지와 감정을 전달하는 것 또한 대인관계역량의 중요한 구성 요소라고 생각할 수 있다.

  대인관계역량의 두번째 하위요소는 관계조율이다. 관계조율이란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행동하여 편안함을 느끼게 하며, 다른 사람과 자신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를 바탕으로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필요(needs)를 자신의 것과 똑같이 중요하게 여기고 그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믿음을 고취하는 것 또한 관계조율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협업 또한 중요한 대인관계역량의 하위요소이다. 많은 사람들이 협력하고 조정할 수 있는 방법을 이해하는 조직의식, 팀의 성취 안에서 자신의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겸손, 갈등을 파악하고 목표와 팀 역학에 맞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갈등관리, 다른 사람의 관심과 필요에 따라 모든 당사자의 이익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는 윈윈협상 등이 협업의 구성요소이다.

  끝으로 대인관계역량의 중요한 하위요소로 빠트릴 수 없는 것이 리더십이다.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 팀에게 비전을 제시할 수 있고,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으며, 기대치와 목표를 설정하여 활동과 결정을 위임하고, 다른 사람의 수행이나 학습을 촉진할 수 있는 사람을 우리는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 특정 행동이나 성향을 롤모델링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리더십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의사소통을 잘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조율에 능숙하며, 리더십을 발휘하여 협업을 잘할 때 대인관계역량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각각의 하위요소와 구성요소는 전체적으로 개인의 웰빙(Well-Being)에 영향을 미친다. 

 

3. 대인관계역량을 키우는 학교의 모습

  대인관계역량을 키우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교육을 해야할까? 교육실험실21에서 두가지 믿음에 기초하여 역량성장을 위한 교육을 설계한다. 첫번째 믿음은 뉴캐슬대학의 수가타 미트라 교수가 주창한 ‘자기조직화학습환경(Self Organized Learning Envionment, SOLE)’이다. 수가타 미트라 교수는 ‘벽 속의 구멍(Hole in a Wall)’ 실험을 통하여 아이들은 스스로 학습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우리 역시 아이들은 스스로 역량을 성장시킬 힘이 있으며, 배움에 대한 즐거움을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두번째는 존 듀이의 ‘경험에 의한 학습(Learning by Doing)’에 대한 믿음이다. 우리는 ‘교육이란 경험의 끊임없는 개조이며, 미숙한 경험을 지적인 기술과 습관을 갖춘 경험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라는  존 듀이(‘민주주의와 교육', 1916)의  주장이 아직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반추(반성적 사고)과정을 통해서만 아이들의 역량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SOLE’와 ‘Learning by Doing’이라는 두가지 핵심 원리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에서 아이들의 대인관계역량은 저절로 성장한다. 학교가 아이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그 안에서 대인관계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디자인하면, 아이들은 ‘학교’라는 ‘삶'의 공간에서 다양한 경험속에서 대인관계역량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캠퍼스는 2017년부터 진행되어온 교육실험을 통해서 이런 우리의 생각이 옮음을 실증하고 있다. 이를 수업장면에서의 경험과 수업 외 학교생활에서의 장면으로 구분하여 살펴보자.

  수업장면에서 거꾸로캠퍼스의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의사소통을 한다. 단순히 잡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계속해서 정보와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것이다. 이 과정속에서 정확한 정보와 메시지 교환을 위하여 아이들은 주의깊게 경청하고, 적절하게 질문하는 것을 배운다. 아울러 많은 정보에서 자신에게 유의미한 정보만을 추출하는 통찰력을 발휘하거나 2~3명에서 20~30명의 청중을 대상으로 정보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다양한 경험을 하게된다.

  수업장면에서 나타나는 거꾸로캠퍼스 아이들의 쉴 새 없는 의사소통은 협업을 위한 것이다. 이들에게는 공동으로 완수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있으며, 목표 완수를 위해 협력하고 서로의 이해를 조정해야 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운다. 원활하게 협업을 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상호간의 관계조율 즉, 서로의 차이를 수용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이를 통해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관계조율에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때로는 갈등으로 힘들어 할 수도 있지만, 이 과정에서 갈등을 어떻게 예방하고, 수용하고, 극복하는 지 하는 갈등관리의 기술을 배우게 된다. 때로는 협상하는 것도 필요하며, 나와 상대방 모두가 윈윈하는 방법을 찾을 때만이 좋은 결과를 불러올 수 있음도 깨닫게 된다. 이들은 구조화된 수업틀 속에서 공동 목표 달성을 위해 스스로 역할을 만들고, 그에 따라 비전을 만들고 서로에게 동기부여를 하며, 때로는 서로를 코칭하면서 리더십을 키워나가게 된다.

 수업 외 학교생활 장면에서도 수업에서 보였던 장면들이 그대로 이어진다. 수업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의사소통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관계를 만들고,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거나, 학생회를 조직하여 스스로의 거버넌스를 조직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끊임없이 의사소통하고,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공동의 목표를 만들어 협업하고, 그 과정에서 리더십을 발휘한다. 수업 장면과 다른 점은 수업에서는 학교 또는 교사가 이런 대인관계 경험들이 보다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도록 경험을 조직하지만, 수업 외 학교생활에서는 공동의 목표를 만들거나 활동그룹(동아리 또는 학생회와 같은)을 만드는 것과 같은 경험의 조직마저도 아이들이 맡아서 스스로를 성장시킨다는 것이다.

  거꾸로캠퍼스에 일어나고 있는 이런 놀라운 성장은 전통적인 학교의 모습과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전통적인 학교의 교실(수업장면)에서 학생들은 조용하다. 전통적인 교실에서 의사소통은 교사에서 학생으로 향하는 일방향으로만 일어난다. 학생으로부터 교사로 향하는 의사소통은 질문을 한다거나 질문에 답하는 경우 등 제한적인 경우에만 일어난다. 어떤 경우이든 의사소통은 주로 교사에게 독점되어 있으며, 교사를 제외한 다른 이들의 의사소통은 통제되어 있다. 의사소통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일어나는 관계조율이나 협업 그리고 협업 과정에서 발현되는 리더십 등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경험들은 애초에 배제되어 있다. 

  의사소통과 관계조율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협업이 아니라 시험 점수를 획득하기 위한 ‘억지 협동’을 강요당하는 아이들은 더 안타까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들은 기계적인 분업과 집단내에서의 경쟁에 익숙하게 되며, 이런 상황에서의 협력은 집단 내 경쟁 또는 집단 내 개인주의로 변질되기 쉽다. '억지 협동'이 성적이라는 성과에 매몰되면 구성원 상호 간의 비난과 불평이 이어지고, 이는 관계의 단절 나아가 학교폭력과 같은 심각한 갈등 상황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학교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업 장면에서 대인관계역량을 성장시킬 수 있는 경험들을 하지 못한 아이들은 수업 외 학교생활에서도 이러한 경험을 하기 어렵다. 밑거름이 없이 식물이 성장할 수 없듯이 수업 시간에 건전한 대인관계 경험을 하지 못하고 성장하는 아이들은 수업 외 장면에서도 스스로 그런 경험들을 조직화할 수 있는 힘이 작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본 거꾸로캠퍼스의 예를 상기해보자. 학교와 교사들에 의해 잘 조직화된 성장의 경험들은 성장의 토양이 되고, 아이들은 스스로 대인관계 경험을 조직하고 관계를 확산하고 발전시켜 나가게 된다. 그러나 수업시간에 대인관계 경험이 부족한 아이들은 학교에 자율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상상할 수 없으며, 쉬는 시간이나 등하교 길에서 나누는 신변잡기와 잡담 등의 제한된 의사소통의 경험만을 갖게 된다. 많은 경우 관계를 만드는 대상의 폭이 대부분 좁으며, 관계의 질 또한 높지 않다. 학생회나 동아리 활동 등 학교 주도로 이루어지는 학생 조직에서 아이들은 대상으로 전락하기 쉬우며, 이 과정에서 소수의 아이들만이 협업과 리더십을 경험하게 된다. 

  전통적인 학교의 이런 모습은 심각한 소외 현상과 학교 내 갈등의 심화를 불어오고 있다. 학교 밖 청소년의 수가 40만명에 육박하고, 이들 대부분이 학교를 다니는 게 의미가 없어서(37.2%) 또는 다른 곳에서 원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29.6%)라는 지난 5월 발표된 학교 밖 청소년 실태조사 결과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신문지상을 오르내리는 학교폭력의 심각성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4. 대인관계역량을 키우기 위한 선순환으로

  관계의 위기에 빠진 교실과 학교를 구하고, 나아가 아이들의 대인관계역량을 키우기 위해 지금 우리 학교에서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교육실험실21에서 한 지역교육청과 함께 지난 9월부터 진행하고 있는 ‘교실 관계 회복 프로젝트'가 참고할만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교실 관계 회복 프로젝트'는 외부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실 내 학생간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선정된 학급은 담임교사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컨설팅과 학급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프로그램 2시간을 받을 수 있다. 심각한 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급을 대상으로 2시간의 교육프로그램이 효과가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겠지만 결과는 상상 이상으로 확인되고 있다. 물론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투자를 한다면 보다 많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지만 2시간은 어쩌면 선순환 펌프를 가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일 것이다. 

  2시간의 짧은 시간으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시스템 사고'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역량중심교육을 논할 때, 특히 대인관계역량을 살펴볼 때 ‘시스템 사고’로 접근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시스템 사고는 세상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전체와 관계의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세상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시스템 사고는 전일주의(holisim)에 기반하여 대상을 살아있는 유기체로 보며 부분을 넘어선 전체를 파악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앞에서 설명한 ‘거꾸로캠퍼스'의 경우 학교와 교사는 학생들이 활발하게 대인관계 경험을 쌓아갈 수 있도록 프로젝트라는 과제(목표)를 제시하였고,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실제 대인관계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다양한 환경을 조직하였다. 학생들의 수업에서의 대인관계 경험과 역량은 수업 외 학교생활로 확장되면서 스스로 방향을 잡고 경험을 조직하면서 또 다른 다양한 경험으로 연결되고 이를 통하여 학생들의 역량 성장은 가속화된다. 수업 외 학교생활에서 얻어진 경험과 역량은 다시 수업 장면에서 활용되며 더 많은 성장으로 연결되고, 이러한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거꾸로캠퍼스라는 시스템에 속한 학생들은 대인관계역량을 성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반면 많은 전통주의 학교에서는 이러한 성장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거나 안타깝게도 역성장 또는 갈등확장시스템이 작동하면서 관계에서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시스템을 이해하면, 순환의 기제를 바꿀 수 있도록 ‘넛지'해주는 것으로 변화를 이끌 수 있다.

  관계 회복을 위한 일련의 과정의 첫단계는 현재 가동하고 있는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이다. 교실 또는 학교라는 공간은 대인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진 하나의 생태계이고, 유기체처럼 학급마다 독특하며(unique),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먼저 시스템을 최대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 과정은 구성원인 담임교사와 학생들를 인터뷰하는 것으로 진행되며, 이 과정에서 다양한 정보를 최대한 취합하여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몇 가지 사례를 예로 들면, A고등학교의 경우 입시의 부담감으로 인해 구성원간의 경쟁이 심하며, 공동 창작 활동에서 서로에 대한 불만과 이를 여과없이 표현하는 의사소통 방식으로 인해 갈등이 격해진 상태였다. B고등학교의 경우 겉으로는 평화롭고 모두 사이좋게 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밑에서 긴장감이 흐르고 있으며, 학급이 친한 사람들 중심으로 몇 개로 나누어져 그룹 간 반목이 심한 상황이었다. C고등학교의 경우 학생 몇명이 주도권을 잡고 다른 학생들에게 영향력을 강하게 행사하고 있었으며, 학생 전체의 성취동기와 자존감이 낮은 상황이었다. 또한 최근에 있었던 학급내 학교폭력으로 인하여 안전감 또한 낮은 상태였다. 앞에서 열거한 내용들은 각각의 학급이 속한 현상에 대한 것이며, 시스템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게 된 원인과 과정, 구성원 개개인의 니즈, 개인간 역학과 의사소통 구조, 학급활동의 내용과 질에 대한 고려 등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이다.

  두번째 개입의 방향 및 목표 설정 단계이다. 외부전문가는 학급이라는 시스템에 상주하며 이를 돌볼 수가 없다. 따라서 선순환으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을 때 이를 지켜보며 계속해서 선순환방향으로 시스템을 움직일 일차적인 책임이 담임교사에게 있다. 물론 담임교사 또한 시스템을 구성하는 일원이므로, 구성원 모두가 선순환되도록 시스템을 돌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여러 한계로 인하여 개입의 방향 및 목표 설정은 주로 담임교사와의 협의로 진행하였다.  앞에서 예로 들었던 A고등학교의 경우 의사소통의 방법을 익히고 연습하는 것으로 목표를 잡았다. B고등학교의 경우 학급 내 안전감을 높이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진솔한 이야기를 서로에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며, C고등학교의 경우 학생 개개인의 성취감을 높이고, 학급 내 힘을 모두가 균등하게 나누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개입의 방향과 목표 설정은 구성원에게 가장 영향을 주고 있는 것 또는 가장 효과적으로 선순환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지점을 찾는 과정이다.

  세번째 단계는 학급 구성원들과 함께 시스템이 선순환 뱡향으로 이동하도록 넛지(nudge)하는 과정이다. 이 때 존 가트맨 박사의 ‘건강한 관계의 집(The Sound Relationship House)'(사진출처: https://relations.geostandart.com/) 모델은 어떻게 넛지해야하는지 방향에 대한 통찰을 준다.   

인간 관계에 대한 세계적인 권위자인 가트맨 박사는 집 모형으로 건전한 인간관계를 설명한다. 신뢰라는 두 기둥사이에  사랑의 지도(Build Love maps), 호감과 존중 나누기(Share Fondness and Admration), 다가가는 대화(Turn Toward Instead of Away), 긍정적인 관점(The Positive Perspctive), 갈등 관리하기(Manage Conflict), 꿈을 이루도록 돕기(Make Life Dreams Come True), 의미를 공유하기(Create Shared Meaning) 등의 단계를 하나씩 쌓아갈 때 건전한 인간관계를 쌓을 수 있다고 하였다. 앞에서 설명한 첫번째 단계인 '시스템 이해하기'는 어쩌면 현재 필요한 단계를 확인하는 것이며, 세번째 단계인 '넛지'는 현재 필요한 단계를 튼튼히 만들어 아래 단계로 내려가지 않도록 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도 있겠다. 

  안타까운 것은 사례로 들었던 모든 학급의 경우 가트맨 하우스의 가장 아래 단계와 신뢰라는 두 기둥조차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우리 교육 현장 대부분의 학급 역시 비슷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관계회복 프로젝트'에서 만난 대분분의 학급과는 우선 가장 아래 단계부터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했다. 

  가장 아래 단계인 ‘사랑의 지도’는 서로에 대한 안전감을 만드는 단계이다. 사람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안전감을 갖는다. 날카로운 칼도 숙련된 요리사에게는 안전감을 주는 이유이다. 이처럼 서로를 알게 될 수록 사람들은 상대방으로부터 안전감을 얻을 수 있는데,  ‘사랑의 지도'는 로 이처럼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안전감을 확보하는 단계이다. 두번째 단계인 ‘호감과 존중 나누기’는 작은 호감이나 서로에 대한 존중을 표현함으로써 지속적으로 관계를 조율해 가는 과정이다. 세번째 단계인 ‘다가가는 대화'는 호감과 존중을 표현하는 의사소통 방식을 체화함으로서 의사소통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관계를 조율할 수 있는 단계이다. 사례로 들었던 학교의 경우 상황에 따라 조심씩 다르지만 1~3단계까지의 과정을 내용으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일련의 과정은 전일적으로(holistic) 진행되며, 시스템 사고를 바탕으로 설계된 교육프로그램에 따라 진행된다.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은  관계 조율을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놀이활동에 참여하고, 서로에게 못한 말을 편지로 써서 읽거나, 순서대로 돌아가며(서클방식으로) 말하게 된다. 언뜻 보기에 단순히 웃고 떠들고 노는 과정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진심을 전하고, 서로의 진심을 마음으로 경청하고, 공감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지, 어떻게 듣고 공감해야 하는지를 조금씩 알아가게 되고, 이런 작은 알아차림은 경험을 반복하면서 앞으로의 성장을 위한 씨앗이 된다. 무엇보다도 이 과정에서 ‘학급이 안전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호감과 존중, 신뢰와 관계를 쌓아가는 의사소통 방법을 경험하게 된다. 참여한 모든 학교 구성원들이 자신들이 만든 결과에 스스로 감동하며 서로를 신뢰하게 되고, 이런 감동과 서로에 대한 신뢰는 선순환으로 이어지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선순환이 지속되도록 시스템을 돌보는 것이다. 시스템은 유기체처럼 계속해서 변화하고 발전한다. 누군가 시스템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아이들이 대인관계역량을 기를 수 있는 좋은 경험을 지속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돌보야야 하는 이유이다. 담임교사가 이와 같은 시스템 지키미의 역할을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도록, 진행과정을 함께 성찰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어떤 것들을 할 수 있는지 이야기하는 것으로 프로젝트의 마지막 단계가 마무리된다.

 

5. 교사의 역할을 생각하며

  대인관계역량을 성장시키기 위해 학교에서 교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대인관계역량을 키우고 있는 거꾸로캠퍼스의 사례나 관계회복프로젝트에 참여한 학교의 사례를 설명하면서 교사의 역할에 대한 단초를 이미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믿음 아래 이를 돕고 촉진할 수 있는 환경과 특히 경험을 디자인하는 것을 학교의 목표로 생각한다. 따라서 교사의 첫번째 역할은 경험의 설계자이자 촉진자이다. 아이들이 보다 빠르고 안전하게 자신의 대인관계역량을 성장시킬 수 있도록 적절하게 경험을 디자인하고, 의사소통과 협업을 촉진시킴으로써 활발하게 관계를 조율하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두번째 역할은 가이드 또는 중재자의 역할이다. 대인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경험을 성장의 밑거름으로 환영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앞으로의 성장을 위해 거름이 될 좋은 경험들도 있지만 독성이 너무 커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경험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갈등의 골이 너무 깊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도 만날 수 있다. 이것이 교사가 가이드나 중재자가의 역할을 해야하는 이유이다. 다만 대인관계역량의 성장을 위해서는 가이드나 중재자로서 교사의 역할은 제한적이어야 한다.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경험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길을 이끄는 길잡이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먼발치에서 따르며 길을 잃거나 위험한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보는 것이 교사의 역할일 것이다.

  마지막 역할은 구성원의 한사람으로서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 가장 좋은 가이드는 스스로 좋은 사례가 되는 것이다. 아이들 속에서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의사소통하며, 자연스럽게 인간대 인간으로서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교사의 모습을 통해 아이들은 무엇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팀원들과 협업하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리더십을 발휘하는 교사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비전을 만드는지, 어떻게 동기를 만들고, 각자의 역할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나누는지 배울 수 있도록 이끈다. 교사의 역할 모델링은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역할모델링과 코칭을 하는 경험으로 이어지고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각자의 리더십을 키워나갈 수 있다. 기꺼이 본보기가 됨으로써 가이드 하는 것이 교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인 것이다.

  본보기로서의 교사의 역할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연스러운 삶의 노출’이다. 학생들 앞에서와 자신의 실제 삶을 다르게 살아가야 한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겠는가? 학생들 역시 꾸며진 본보기는 금방 알아볼 수 있으며 오히려 역효과만 줄 것이다. 완벽한 인간이란 없다. 아이들이 다양한 교사의 삶을 통해 대인관계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자신의 삶을 본보기로 투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아이들과 함께 교사 또한 삶 속에서 경험하고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보일 때, '경험함으로써 스스로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 교육실험실 21 코레터